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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수 신(盧守愼)
2. 선생의 품성(品性)
나. 학자(學者)로서
소재(穌齋) 선생은 어려서부터 명석(明晳)하고 지혜로워 학문에 소질이 있었고, 그 기상(奇想: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생각)이 대단하여 주위 사람들을 여러 번 감탄케 하였다고 한다.
생애(生涯)를 통해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생은 평생 동안 학문을 게을리 하였던 적이 없다.
17세 때 탄수(灘叟)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도(道)와 요(要)에 대하여 배웠고, 소학(小學)책으로 일상생활의 근본을 삼았다. 30세 때에는 퇴계(退溪)선생과 도의(道義)를 강론(講論)하는 즐거움이 많았고, 유배생활 중에도 학문연구를 계속하여
[서연강의록(書筵講義錄)]을 편찬하고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와 [동몽수지해(童蒙須知解)]를 지었으며,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과 [집중설(執中說)]을 저술하여
퇴계선생 및 노옥계(盧玉溪 진(禛):본관은 풍천)선생 등 많은 학자들과 서신(書信)을 통하여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을 벌였고,
옥주(沃州:진도의 옛 이름)에서 2천언(二千言)의 시를 지었다.
유배생활에서 벗어난 후에도 선생은 예문관(藝文館)과 홍문관(弘文館)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학문연구에 주력하여, 일생을 통해 진실한 학자의 상(像)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