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빛낸인물

노 서(盧 恕)

노 단(盧 亶)

노준경(盧俊卿)

노상인(盧尙仁)

노상의(盧尙義)

노상례(盧尙禮)

노상지(盧尙智)

노상신(盧尙信)

노 의(盧 毅)

노자원(盧自元)

노자형(盧自亨)

노자정(盧自貞)

 

 

생 애

㉮ 가문과 젊은 시절

㉯ 유배생활

㉰ 환로와 만년기

 

노수신(盧守愼)

선생의 품성▶

㉮ 효제충신

㉯ 학자로서

㉰ 교육자로서

㉱ 도덕군자상

 

㉲ 관료생활

     

학문과 철학▶

한국유학의

   전래와그 주류

선생의 문집

시강록

숙흥야매잠해

 

인심도심변

㉳ 집중설

㉴ 동몽수지해

㉵ 선생의 사상

 

 

㉶ 선생의 추원록

 

 

 

 

노 숭(盧 嵩)

생 애

선생의 품성

업 적

 

현대인물

 

▣ 노 수 신(盧守愼)

 

2. 선생의 품성(品性)

 

나. 학자(學者)로서

 

소재(穌齋) 선생은 어려서부터 명석(明晳)하고 지혜로워 학문에 소질이 있었고, 그 기상(奇想: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생각)이 대단하여 주위 사람들을 여러 번 감탄케 하였다고 한다.

생애(生涯)를 통해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생은 평생 동안 학문을 게을리 하였던 적이 없다.

 

17세 때 탄수(灘叟)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도(道)와 요(要)에 대하여 배웠고, 소학(小學)책으로 일상생활의 근본을 삼았다. 30세 때에는 퇴계(退溪)선생과 도의(道義)를 강론(講論)하는 즐거움이 많았고, 유배생활 중에도 학문연구를 계속하여

[서연강의록(書筵講義錄)]을 편찬하고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와 [동몽수지해(童蒙須知解)]를 지었으며,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과 [집중설(執中說)]을 저술하여

퇴계선생 및 노옥계(盧玉溪 진(禛):본관은 풍천)선생 등 많은 학자들과 서신(書信)을 통하여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을 벌였고,

옥주(沃州:진도의 옛 이름)에서 2천언(二千言)의 시를 지었다.

 

유배생활에서 벗어난 후에도 선생은 예문관(藝文館)과 홍문관(弘文館)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학문연구에 주력하여, 일생을 통해 진실한 학자의 상(像)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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