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빛낸인물

노 서(盧 恕)

노 단(盧 亶)

노준경(盧俊卿)

노상인(盧尙仁)

노상의(盧尙義)

노상례(盧尙禮)

노상지(盧尙智)

노상신(盧尙信)

노 의(盧 毅)

노자원(盧自元)

노자형(盧自亨)

노자정(盧自貞)

 

 

생 애

㉮ 가문과 젊은 시절

㉯ 유배생활

㉰ 환로와 만년기

 

노수신(盧守愼)

선생의 품성▶

㉮ 효제충신

㉯ 학자로서

㉰ 교육자로서

㉱ 도덕군자상

 

㉲ 관료생활

     

학문과 철학▶

한국유학의

   전래와그 주류

선생의 문집

시강록

숙흥야매잠해

 

인심도심변

㉳ 집중설

㉴ 동몽수지해

㉵ 선생의 사상

 

 

㉶ 선생의 추원록

 

 

 

 

노 숭(盧 嵩)

생 애

선생의 품성

업 적

 

현대인물

 

▣ 노 수 신(盧守愼)

 

2. 선생의 품성(品性)

 

다. 교육자(敎育者)로서

 

사대부(士大夫)에 있어 학문과 경세(經世:세상을 다스림)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듯이 학문과 교육을 분리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선생의 교육관은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바탕으로 넓고 깊은 도를 알고, 행하는 선비를 길러 내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선생의 업적을 기록해 둔 문헌(文獻)들이 아직 발견되고 있지는 않지만, 선생의 생애를 통한 행적(行蹟)들을 살펴볼 때 먼저 소학(小學)으로써 일상생활의 표본으로 삼고 그 다음 경(經)과 서(書)와 예(藝)를 배우도록 가르쳤으리라 생각된다.

 

선생은 시강직(侍講職)에 205일간 재임하고 있을 때 서연(書筵:왕세자가 강론을 받는 곳)에서 100여 일 동안 동궁(東宮)에게 요순(堯舜)의 도에 관하여 강론(講論)하였는데 그 내용은 효제(孝悌)에 극진하고, 현(賢:어짊)과 사(邪:간사함)를 분별하고, 학문에 힘을 쓰며, 욕심을 버리라는 것 등이었다.

 

중국과 조선의 모든 현인들이 인종(仁宗)을 성군(聖君)으로 평하는 것은 인종의 천성(天性) 탓도 있겠으나 소재(穌齋) 선생의 영향도 무척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생은 진도의 유배지에서도 각 처소마다 서당(書堂)을 세우고 친히 청소년들을 가르쳤고, 부모들과 진도의 도민들을 교화(敎化)시켰으며, 멀리 육지에 살고 있는 두 조카를 가르치고 올바르게 양육시킬 수 있는 지침서(指針書)로써 [자훈(字訓)]과 [동몽수지해(童蒙須知解)]를 지어 보내 주었는데, 이 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배우고 실천할 만한 내용을 지닌 것으로 무척 가치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

 

또한 선생은 선비들이 꼭 알고 지켜야만 될 일상생활의 도(道)를 이야기한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해석하고 퇴계 하서와 토론하여 그 내용을 정립(定立)시켰는데, 이를 선조(宣祖)께 바치자 선조는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간행하도록 하였다.

 

퇴계 선생도 이 책을 보고, “우리나라에 사도(斯道:공자의 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책이 후세에 전해지리라.”고 하였다.결국 선생은 직접 후진(後進)을 가르치고자 하였고,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해서(註解書)를 지어 그들의 학문연구와 도(道)의 실행을 돕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소재선생의 교육자로서의 높은 뜻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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