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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수 신(盧守愼)
3. 學問과 哲學
가. 韓國儒學의 傳來와 그 主流
선생은 유교의 모든 경전(經傳)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최고경(最高經)인 선학(禪學)까지 넓고 깊게 연구한 대학자(大學者)였기 때문에, 선생의 학문은 한국 유학의 전체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유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고구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유학의 경전(經典)을 해석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며 공맹사상(孔孟思想)에 철저(徹底)하였던 본래의 유학은 조선시대 중엽까지 정치(政治), 경제(經濟), 법률(法律), 철학(哲學), 윤리(倫理)와 도덕(道德), 예(藝), 악(樂), 문학(文學)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발전을 주도해 왔다.조선시대 중엽에 와서는 고려 말에 전래된 유학(儒學)의 한 지류(支流)라 할 수 있는 정주학(程朱學:性理學을 말함)이 유행하여 한국유학의 주축(主軸)이 되었으며,
양명학(陽明學)도 전래된 적이 있지만 사문난적(斯文亂賊:유교문화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란 공격에 부딪혀 제대로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
조선시대 중엽 이후에 유행하였던 주자학(朱子學)은 숭고한 인륜도덕(人倫道德)과 청렴절의(淸廉絶義)의 존중이란 방향에서 조선시대의 체제확립(體制確立)과 사회 안정 및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반면에 인간평등사상(人間平等思想)을 외면하고 귀족화(貴族化)되어 본래의 공맹사상(孔孟思想)과는 상당한 차이를 빚어내었고,
당쟁(黨爭)과 계급주의(階級主義)를 싹트게 하여 사회를 경직화(硬直化)시키고 산업적(産業的) 능력을 저하(低下)시켰으며, 지나친 숭문사상(崇文思想)은 사대주의(事大主義)를 움트게 하였고 무(武)를 지나치게 천시(賤視)하여 여러 번 외적(外敵)의 침입을 받게 하였다.
또한 허명(虛名:실속이 없는 헛된 명성)을 숭상(崇尙)하는 상명주의(尙名主義)를 낳게 하여 관료층(官僚層)의 대립이 극심해졌으며 가난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유학의 경전(經傳)들을 살펴보면 서경 (書經:3경 또는 5경) 춘추(春秋), 논어(論語), 맹자(孟子)는 문장(文章)의 표본(標本)이 된 것으로, 정치ㆍ경제ㆍ법률ㆍ윤리와 도덕을 논(論)하였고, 용학(庸學)과 주역(周易)은 철학(哲學)을 말하였으며, 예기(禮記)와 악기(樂記)는 예(禮)와 악(樂)을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