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빛낸인물

노 서(盧 恕)

노 단(盧 亶)

노준경(盧俊卿)

노상인(盧尙仁)

노상의(盧尙義)

노상례(盧尙禮)

노상지(盧尙智)

노상신(盧尙信)

노 의(盧 毅)

노자원(盧自元)

노자형(盧自亨)

노자정(盧自貞)

 

 

생 애

㉮ 가문과 젊은 시절

㉯ 유배생활

㉰ 환로와 만년기

 

노수신(盧守愼)

선생의 품성▶

㉮ 효제충신

㉯ 학자로서

㉰ 교육자로서

㉱ 도덕군자상

 

㉲ 관료생활

     

학문과 철학▶

한국유학의

   전래와그 주류

선생의 문집

시강록

숙흥야매잠해

 

인심도심변

㉳ 집중설

㉴ 동몽수지해

㉵ 선생의 사상

 

 

㉶ 선생의 추원록

 

 

 

 

노 숭(盧 嵩)

생 애

선생의 품성

업 적

 

현대인물

 

▣ 노 수 신(盧守愼)

 

3. 學問과 哲學

 

나. 先生의 文集

 

선생의 문집으로 발간된 것은 두 본(本)이 있었는데, 한 본(本)은 1602년(宣祖 35)에 선생의 조카 노대하(盧大河)가 천안군수(天安郡守)로 있을 때 큰 목판 활자로 창간(創刊)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속리산의 승사(僧舍)에 보관 중이었던 판본(板本)이 절의 화재로 인하여 불타 없어졌다.

 

다른 한 본(本)은 강주천(康舟川:강유선)의 아들인 강복성(康復誠:선생의 처 이질이고 문하생의 한 사람)이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을 때 주자(鑄字:쇠붙이로 주조해 만든 활자)로 간행(刊行)한 바 있고, 그 후 봉화현감(奉化縣監) 경명(景命)은 형(兄)인 준명(峻命)과 함께 자형(姉兄)인 사간(司諫) 심대부(沈大孚)에게 부탁하여 문집을 외집(外集)과 내집(內集)으로 나누었고 이를 목판본(木版本)으로 간행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외에도 선생의 학식과 경륜으로 미루어 볼 때 더 많은 문집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조선시대의 당파싸움과 임진왜란, 일제시대 등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이 소실(消失)되었음이 분명하다.

 

다행히 1987년 봄에 선생의 후손들이 영인본(影印本)을 내게 된 것은 선생의 학식과 덕망을 기리는데 커다란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선생의 문집은 아직 문집전체가 완역(完譯)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선 목록(目錄)만 소개한다.

 

※ 先生의 文集

 

1) 내집(內集)에 실린 것

서연강의록(書筵講義錄:侍講錄이라고도 함)

숙흥야매잠해(夙與夜寐箴解)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

집중설(執中說)

자훈(字訓)

동몽수지해(童蒙須知解)

서기록(庶幾錄)

왕복서독(往復書牘:왕복편지를 모아 엮은 책)

 

2) 외집(外集)에 실린 것

시부(詩賦) 1603수(首)

잠(箴) 1, 차(箚) 6

찬(贊) 1, 전(篆) 6

축문(祝文) 2, 사면(辭免) 29

교서(敎書) 1, 행장(行狀) 1

서(序) 5, 묘표(墓表) 2

발(跋) 4, 묘지(墓誌) 1

기(記) 1, 비명(碑銘) 7

제문(祭文) 6, 갈명(碣銘) 12

과제(科製) 3편(篇)

소(疏) 17, 선생자명(先生自銘) 1

 

3) 부록(附錄)에 실린 것

연보(年譜) 1, 행장(行狀) 1

행장일사(行狀逸事)

 

4) 추보(追補)에 실린 것

사제문(賜祭文), 신도비명(神道碑銘),

봉산서원봉안문(鳳山書院奉安文)

유택면봉시(幽宅緬奉時), 만사(輓詞), 제문(祭文), 추감운(追感韻)

이외에도 가례(家禮)가 있었으나, 간행되기 전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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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北地方文化財로 指定된 先生의 親筆本(지방문화재 218호)

 

 

 

◎ 先生의 遺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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