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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수 신(盧守愼)
3. 學問과 哲學
다. 侍講錄
[시강록(侍講錄)]은 선생이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로 있을 때 왕세자인 인종(仁宗)에게 강의하였던 내용들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정리하여 둔 강의록(講義錄)으로 [서연강의록(書筵講義錄)]이라고도 한다.
선생의 행장(行狀)에 수록된 것을 참고로 시강록의 내용을 대략적(大略的)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서전(書傳)]을 강의할 때 선생은 “요순(堯舜)의 덕(德)을 닦기 위해서는 경(敬)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경(敬)이란 극기복례(克己復禮:지나친 욕심을 누르고 예절을 따르도록 함)로써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경을 철저히 실행하여 체(體)와 용(用)을 겸비하고 동(動)과 정(靜)을 합해야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길이 있다.
무릇 사람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사성(四性)을 타고 났으나, 이(耳)ㆍ목(目)ㆍ구(口)ㆍ비(鼻)ㆍ애(愛)ㆍ오(惡)에 욕심이 있으니 이것을 순(舜)임금이 인심(人心)이라 하였고, 이치(理致)에 맞고 절도(節度)에 맞는 것을 천리(天理) 즉, 도심(道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반드시 도심(道心)으로써 인심(人心)을 따르게 하여 사람의 본성(本性)을 맑게 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경(敬)과 인(仁)과 성(誠)의 이치는 하나이다.
하늘에 있어서는 성(誠)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敬)이니 천지(天地) 사이에 천도(天道)이니 이것이 생겨나는 것은 오직 천리(天理) 즉, 도신(道心)만이 있기 때문에 그 이치가 하나인 것이다.
성(誠)이라는 것은 오직 성인(聖人)의 마음에 따른 것이고, 또한 성(誠)이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근본(根本)을 이루는 것이므로 하늘과 성인은 사이가 없다. 그러므로 경(敬)으로써 주재(主宰)를 삼는다는 인(仁)과 성(誠)은 그 가운데에 있게 된다.”고 하였다. [사기(史記)]를 강의할 때에는 “형제(兄弟)는 천속(天屬)이다.”라는 내용이 강론(講論)되었는데 “형제는 친(親)이란 한 사람으로부터 하나의 기혈(氣血)을 나누어 받았고, 인도(人道: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의 착한 성품(性品)을 이어받은 천속(天屬)이다.
그러나 가끔씩 서로 화합(和合)하지 못하고 서로 변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참소(讒訴:터무니없는 사실로 남을 헐뜯어 고해바침)하는 나쁜 사람이 있어 형제간에 이간(離間)을 놓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려면 반드시 평소부터 우애(友愛)가 깊어야 하고, 서로의 성의(誠意)를 믿어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효(孝)의 넓은 뜻을 이야기한 것이다.
[강목(綱目)]을 강의할 때에는 “경사(經史:書經과 史記)로서 자오(自娛:스스로 즐겁게 함)한다.”는 대목에서 “위(魏)나라의 문제(文帝)와 당(唐)나라의 문종(文宗)이 경사(經史)로써 자오(自娛)하였으므로 두 임금이 모두 학문을 좋아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문제(文帝)는 형제간에 은혜(恩惠)가 없었고 문종(文宗)은 부드러우나 나약(懦弱)하여 자립(自立)하지 못하였으니 경사(經史)를 익힌 것이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하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을 강의할 때에는 “시작이 있으면 곧 마침이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음양(陰陽)과 굴신(屈伸:굽힘과 폄)의 이치(理致)는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끊임없이 진행된다.”고 하였고, “무망(無妄)과 불기(不欺)”에서는 “무망(無妄)이란 자연(自然)의 성(誠)이니 하늘의 도(道)이고, 불기(不欺)라는 것은 주작(做作:없는 사실을 꾸며 만듦)을 버리는 일에 힘쓰는 것이니 사람의 도(道)이다.
그러나 불기(不欺)에 힘을 쓰면 무망(無妄)에도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공즉일(公則一)”에 대해서는, “일(一)이라고 이르는 것은 곧 인(仁)이다. 인(仁)의 도(道)는 더 없이 커서 실로 마음속으로 깊이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용서(容恕)만한 것이 없다.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용서를 행하는 것이 인(仁)을 구하는 지름길이라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능(能)히 가까이 하여 깨우침을 취(取)하는 것이 인(仁)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하였으니, 이것 모두가 용서(容恕)로써 인(仁)을 구하는 묘책(妙策)이다. 그러나 옛사람은 충심(忠心)이 있는 뒤에야만 참다운 용서(容恕)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라고 강의하였다.